이스라엘, 팔레스틴 지역 위조품 논쟁

고고학적 유적/유물의 위조 논쟁이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142) 이스라엘/
팔레스틴 지역에서도 고고학적 위조품 논쟁이 크게 일었다. 이 논쟁에 대상이 된 유물이 몇
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세 가지 논란을 다루고자 한다

첫번째

이른바 ‘야고보 납골함’으로 알려진 로마 시대의 한 납골함이 소르본느 대학교의 금석학자인 앙드레 르메흐 교수에 의하여 출판되었다.143)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납골함은 비록 고고학적 발굴에서 출토된 것은 아니지만, 이 납골함은 신약성서 시대의 배 경이 되는 로마 시대의 것이며, 납골함 한 면에 새겨진 비문은 아람어로서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 야고보”로 읽을 수 있으며 이 비문 역시 로마 시대의 것이다. 르메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여기에 기록된 야고보는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동생 야고보 사도이며, 따라서 이 납골함은 그의 것이다. 르메르 교수의 글이 출판된 이후 이 납골함은 세계의 학 자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캐나다에서 전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래에서 살펴보게 될 요아스 비문과 함께 곧 위조품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둘째

‘요아스 비문’으로 알려진 남유다 왕국의 왕정 비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 었다.144) 현무암 위에 새겨진 이 비문은 기원전 9세기 남유다의 왕이었던 요아스 왕에 의하 여 새겨진 것으로 내용에 따르면, 구약성서가 전해 준 바와 같이(왕하 12:5-17; 대하 24:4-14) 자발적 기부로 인하여 채석된 돌, 나무, 에돔 구리를 구입하여 성전 수리를 행하였 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내용에 대하여 학자들은 하나같이 성서 구절을 바탕으로 위조된 것이며, 구약성서 시대에 사용하지 않은 단어와 구문으로 인하여 바탕으로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위 두 물건의 위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2003년도에 12명의 학자들이 위원회로 모였었다. 금석학자들과 과학 성분 분석자들이 함께 모여 이 비문들이 진품인지 아니면 위 조품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였는데, 요아스 비문을 위하여 네 명의 금석학자들, 야고보 납골 함 비문 분석을 위하여 네 명의 금석학자들, 두 개의 비문이 쓰인 재료의 과학적인 성분 분 석을 위하여 네 명의 전문가들이 진위를 파악하였다. 금석학자들은 야고보 납골함의 비문분석을 통하여 글자 형태로 보았을 때,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가 힘들지만, 성분의 과학적 분석의 결론을 힘입어서 위조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성분 분석이었는데 이를 시행하였던 전문가들은 분석 결과 납골함 자체는 위조가 아니며, 글자 중에서도 앞부분 ‘야고보, 요셉의 아들’이라는 쓰인 곳은 진품이지만, 그 뒤에 있는 글자 ‘예수의 형제’라는 표현은 현대의 위조자에 의 하여 쓰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그곳의 특정 산소 원소의 분포와 양이 주후 1세 기 시대 때의 예루살렘 부근에서 나온 납골함과 다르기 때문에 현대의 것이라고 주장을 내 렸다. 위원회의 이러한 결론 이후 곧 오데드 골란은 골동품 위조자로 몰리게 되었고, 경찰 은 그의 집에서 위조품 도구들을 발견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이 문제는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는데 고고학적 유물의 위조 문제가 처음으로 법적 공방으로 이어진 사례가 되었다. 2012년 3월 14일,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건 재판을 담당한 아하론 파르카쉬 판사는 납골함과 관련하여 그것은 위조가 아니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석류 모양 상아홀

야고보 납골함으로 인한 위조품 소용돌이에 휘말린 또 하나의 물품은 상아로 만들 어진 석류모양 홀이다. 이것 역시 고고학적 발굴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라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된 것으로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구입 당시(1988년) 고가를 지불하고(55만불) 구입하였다.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물 중에 하나였던 이것은 문자가 몸체 어깨 부분에 글자가 새겨졌는데 고대 히브리어로 ‘야웨의 집(성전)을 위하여, 제사장들에게 성별’이 기 록되었다. 이는 구약성서 외에 야웨의 성전을 언급한 가장 오래된 비문이면, 문구로 보아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성전에서 대제사장에 의하여 사용된 성전 기물로 여겨졌다.148) 앞서 언급하였던 2004년의 학자들의 모임에서 이 홀에 대한 진위 여부도 다루어졌 는데 학자들은 글자의 형태와 글자가 새겨진 깊이와 그 공간에 채워진 찌끼 등을 자세히 분 석하여 그것이 위조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49) 이에 반대하는 글150)과 다시 재반박하는 논 쟁151) 과정 가운데 결국 이 물품은 이스라엘 박물관의 전시장에서 내려졌다. 고고학적 위조품은 경제적 가치가 있기에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 고고학계에서는 고고학적 발굴에서 출토되지 않는 유물에 대해서 학 계에서 다루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며, 이에 위에서 다룬 물품들에 관한 결론 이후, 골동품 시장에서 나온 유물은 학술적 가치를 주지 않아 출판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학술적인 논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의 기조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이는 고고학적 발굴 허가권을 부여하는 이스라엘 문화재청의 유적 및 유물에 대한 주도권이 더 높여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 이스라엘/팔레스틴 지역의 고고학사와 주요 주제는 다음 몇 가지 사 항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첫째, 이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 종교적 연관성이 있으며 이는 학자들의 정체성과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이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는 좀 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둘째, 19세기부터 시작된 고고학적 활동과 연구는 시대를 따라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이 지역의 고고학사 흐름을 보았을 때 앞으로 고고학적 연구는 점점 과학화, 세분화, 전문화, 지역화의 띠게 될 것이다. 이 지역 특성상 성서와의 관련성을 배제한 채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겠으나 극단적 주장-극단적 세속주의와 극단적 종교주의-를 피하면서, 양 분야의 세심한 연구 결과 이후 그 결과들을 통합하는 시 도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이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는 인류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들을 알려주었 음과 동시에 고대 물질문화에 대한 바른 해석과 이해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현재에 도 매년 고고학적 지표조사와 발굴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기에 이 지역의 심도 있는 물질문 화 연구와 활동은 일반 고고학사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고대 문명의 발생지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고대 문명들의 영향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문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국 세력 이 되었으며 제국에 의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고스란히 물질문화 에 담겨져 있다. 따라서 피지배 지역에 끼친 제국 세력의 영향 즉, 물질문화에 끼친 영향력 에 대한 통시적, 공시적 연구를 하는데 이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 결과는 가치가 있다고 하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