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틴 고고학적 연구의 논쟁점들

인류의 정착 변화 역사와 문화/문명 변화 역사- 농경, 도시, 요새화, 도구, 문자 등 이스라엘/팔레스틴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류문화사를 살펴보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인류 보편사적 측면에서 이 지역의 인류문화 사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본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지역의 정치-문화-지리적 (polio-cultural geographical) 특성이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인류문화사의 흐름을 살피는 l 지 역의 특수한 의미를 살펴본다는 점이다. 인류가 남겨놓은 문화 전체를 고고학적으로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인류문화의 보편적 주제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살피고자 한다.

인류의 정착

이스라엘/팔레스틴 지역에서 인류의 정착은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 은 풍부한 수원자원을 바탕으로 식생대가 이루어져 수렵채집 사회에 적합한 환경이 형성되 었다. 처음으로 정착한 인류는 고대 아슐리안 시대에 속하며 가장 이른 올두바이 문화를 이 루었다. 대표적 도구로 덩어리 도끼(core chopper), 다면체들, 구형도구들, 손도끼, 찍개, 파 편들이 발견되었다.52) 아울러 다양한 동물들의 뼈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유라시아 계열의 것이지 만, 소수 아프리카 기원의 것도 있다. 그 연대는 약 1백50만-1맥만년 전으로 알려졌다. 비록 인골이 고고학적 문맥에서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그 증거는 호모 에렉투스 종인 것으로 알 려졌다. 결론적으로 우베이디야의 발굴 결과는 풍부한 구석기 시대 초기의 물질문화를 보여 주고 있어 아프리카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나왔다는 주장의 증거가 된다.53) 최초의 정착 지역은 갈릴리 호수 남쪽 지역에서 이루어졌지만 이후 정착은 갈릴리 호수 북쪽, 요르단 강 연안에서 발견된다. 더 이후에는 지중해 연안 갈멜 산지에서 발견되 는데 이들 정착지의 공통적인 특징은 수원지 부근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농경 생활- 토기

이 지역의 농경 생활은 슈크카 동굴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알려진 것으로 일명 나투피안 문화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의 삶 의 패러다임이 변경된 나투피안 문화의 특징은 농경 생활을 알려주는 석기들이 발견되었고, 토기가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섰다.54) 약 12,500년 전에 이 지역에서시작된 이는 농경 생활과 함께 토기 제작으로 인한 저장이 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석 기를 통하여 곡식을 거두는 농경 생활이 앞섰고 이후 저장의 필요성이 야기되고 따라서 토 기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토기

이 지역에서 토기는 신석기 시대 내 두 단계의 시기를 지나(Pre-Pottery Neolithic B, Pre-Pottery Neolithic A), 기원전 6천년대에 와서야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신석기 시대에 제작된 토기는 다음 몇 가지는 특징을 지닌다. 첫째, 토기는 한 지역에서 시작하여 점차 확산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에서 지역의 특성과 기술에 따라 제작되었다. 둘째, 토기는 모두 손으로 제작되었으며, 이 제작 방법은 이후 석동기 시대까지 계 속되었고 초기 청동기 시대에 와서야 회전판으로 토기가 제작되었다(아래 참조). 마지막으로, 토기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크기와 형태와 장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스푼, 접시, 작은 대접, 큰 대접, 저장용 항아리, 단지 등의 형태가 제작되었으며, 지그재그 문양, 삼각형 문양, 띠 모양, 비늘 모양 등의 새겨진 장식이 등장하였다. 장식은 모든 형태 에 적용된 것은 아니었으며, 주로 큰 그릇보다는 작은 그릇에, 개방 그릇보다는 닫힌 그릇 에서 장식이 발견된다.

석동기 시대 토기

석동기 시대에는 좀 더 다양한 형태가 제작되었고 연대에 따라 변화를 가졌으나, 초기 청동기 시대에는 이전 시대와 다른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초기 청동기 시대 초기57)에는 토기 형태에 지역적 구분이 나타난다. 이전 시 대에도 이러한 특징이 보고되고 있으나58) 미약하며, 특정 형태가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뚜렷한 지역적 구분이 나타나기 시작하여59) 이후 시대(초기 청동기 시대 2-3기, 중기 청동 기 시대 초기, 후기 철기 시대 초기와 중기 등)에도 지속적으로 지역적 특성이 나타난다. 둘째, 이전까지 수제작에 의하여 토기가 제작된 반면, 초기 청동기 시대 중기 이후부터 회 전판에 의하여 토기가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모든 토기가 회전판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며 또한 후대 시대에도 여전히 손으로 제작된 토기가 발견되지만60), 이 시기부터 시작하여 점 차 회전판으로 제작된 토기가 주를 이루었다. 초기 청동기 시대 중기 때부터 요새화된 도시 가 등장하게 된 것을 감안하여 볼 때 이 시기 사회 조직의 변화와 물질문화의 변화 상호관 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기 청동기 시대

중기 청동기 시대의 특징은 전언한 중기 청동기 시대 초기 때의 특징(지역적 구분 과 수제작 토기) 외에도 중기 청동기 시대 중기와 말기 시대의 정교한 장식이 특징적이다. 이 전통은 후기 청동기 시대까지 계속되는데 중기 청동기 시대에는 적색 손마름질 또는 구 멍의 특징을 지닌 반면,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채색 장식의 특징을 지닌다.61) 전자는 겉표면 에 광택 또는 구멍 장식을 내어 정교함을 드러낸 반면 후자는 채색을 통한 독특한 장면 묘 사가 특징적이다. 한편, 후기 청동기 시대의 저장용 항아리는 울루부룬의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된 파손된 배를 통하여 알려진 바와 같이, 역삼각형의 몸체와 둥근 저부 형태를 지닌 것으로 파도에 파손되지 않고, 배에 적재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무역에 사용된 것이다. 이는 토기 형태와 쓰임새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가나안이 국제 적인 관계를 지닌 것은 역으로 이 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지역(이집트, 사이프러스, 미케네, 힛타이트)에서 수입된 토기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이 시기에 가나안을 통치 하였던 이집트 제국62)의 국제 정책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 철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는 이 지역에 거주하였던 민족들을 배경으로 토기 형태가 구분된다. 블레셋 지역에 거주하였던 블레셋 토기63), 계곡과 골짜기 지역에 거주하며 후기 청동기 시 대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가나안인들의 토기와 중앙 산악 지역에 거주하며 가나안의 채색 전 통과 불연속성을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토기64), 미디안 지역에 기원을 두는 미디안 토기(쿠 라이야 토기)65) 등이다. 후기 철기 시대 토기의 가장 큰 특징은 토기에 행정 표시 즉, 세금 과 관련된 인장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에도 조세를 거두거나 공납의 증거가 발 견되지만, 이 시대에는 저장용 항아리 손잡이에 특정 인장을 찍어, 그 안의 내용물을 세금 으로 구분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곳에 왕정 인장을 찍어 구분하는 특징이 발견된다. 이 는 왕정 국가에 대한 물질문화의 증거라 할 수 있는데, 조세를 위한 인장의 사용은 이후 시 대에도 지속적으로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