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 요새화의 시작- 사회구조의 변화

이스라엘/팔레스틴 지역에서 요새화를 갖춘 도시의 등장은 기원전 3천년대에 와서 야 이루어졌다. 초기 청동기 시대 중기(EB II)와 말기(EB III) 시대의 지층들에서 성벽과 성문 을 갖춘 도시들(벧-예라흐, 므깃도, 텔 알-파라, 키르벳 마흐룩, 타아낙, 아이, 여리고, 야르 뭇, 텔 알-헤시, 텔 할리프, 아라드)이 발견되었다. 중기에는 보다 간략한 형태로 성벽과 망 대를 갖추었으나 말기에 와서는 성벽이 더 두꺼워지고, 미끄럼벽과 성채가 성벽을 따라 건 설되었으며 성의 크기가 최대 20헥트아르에 이른다. 초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들이 이 시대 말기에 이르러 버려지거나 멸망하였다. 어떤 도시들 은 이미 이전에 경제적 또는 다른 이유로 버려졌지만, 대부분은 도시들이 말기에 한꺼번에 도시 문화가 끝이나고 완전히 다른 유목 문화가 등장하였는데 외부적 요인,

아마도 이집트 또는 아모리인들

의 공격으로 인한 변화일 것이다약 300년간의 공백 이후 기원전 2천년대부터 이 지역에 도시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 작하였다. 이 시기의 도시와 요새화의 모습은 성문과 성벽 등 요새화를 갖추며 이른바 도시 -국가 체제를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전 초기 청동기 시대의 것과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초기 청동기 시대에 요새화되지 않았던 장소들이 이 시대에 도시들로 등장하 였다. 이는 300년에 가까운 공백 기간, 초기 청동기 시대에 요새화되었던 도시들이 중기 청 동기 시대에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함께 고려해 볼 때, 중기 청동 기 시대의 도시와 요새화의 기원은 초기 청동기 시대의 연속성에서 찾는 것보다 다른 요인 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케 한다.69) 둘째, 초기 청동기 시대에는 소수의 장소들을 제외하고 도시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 았던 중앙 산악지역에 장소들-세겜, 실로, 벧엘, 기브온, 예루살렘, 벧-추르/벧술, 헤브론, 키 르벳 라부드/드빌 등-이 요새화 시설을 갖춘 도시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이 도시들은 동 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중기 청동기 중기부터 말기까지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건 설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의 요새화의 모습

은 이전 시대의 것과 심지어 어떤 경우는 이 후 시대(페르시아 시대까지)의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거대하고 견고한 건축물을 포함 한다. 거석으로 이루어진 성문이 건설되었고, 거대한 양의 흙으로 둘러싼 (어떤 곳은 그 너 비가 40미터에 이르는) 방어벽이 텔 하솔, 악고, 텔 부르가, 텔 즈로르 등지에서 건설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이 방어벽 또는 성벽에 적군이 공격을 방해하는 목적으로 미끄럼 벽이 발견 되는데, 이러한 건축물은 상당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 시기 사회구조가 변화되 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시기의 역사자료-이집트의 저주문서에서 확인되는데, 이 문서 에 따르면 이 시기 가나안은 각 도시마다 둘 또는 셋의 통치자들이 있었고, 이후에는 한 명 의 통치자가 다스렸다.

이집트의 통치하게 있었던 후기 청동기

시대에 소수의 도시(예를 들어, 하솔)를 제 외하고, 가나안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요새화의 모습을 지니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피지배 인들인 가나인은들이 저항세력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이집트 신왕조 제국의 정책이라고 이 해된다.72) 초기 철기 시대(기원전 약 1200-1000년)에는 블레셋 지역의 몇 장소들(아쉬도드/아스돗, 아쉬켈론/아스글론, 에크론/에그론, 가드)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장소들은 요새화를 갖추지 않은 정착 형태를 띤다.73) 후기 철기 시대(기원전 1000-586년)에 처음으로 요새화를 지닌 지점은 비교적 최근에 새롭게 발굴(2007-2013년)된 키르벳 케이야파이다. 기원전 약 1000년경에 건 설된 이 장소는 보통 2-3톤, 최대 8톤 무게의 거석으로 건설된 포곽벽(casemate city wall)74) 과 남쪽과 서쪽에 각각 건설된 일정한 크기의 4실 성문을 지니고 있다. 약 20만 톤의 돌이 이곳의 요새화를 위하여 사용되었는데 이는 징집된 노동력 즉, 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 라서

키르벳 케이야파의 요새화된

도시는 이 시기부터 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려주는 고고 학적 증거라 할 수 있다.75) 이 도시 이후 하솔, 므깃도, 게셀, 라기스, 텔 베이트 미르심, 벧 쉐메쉬/벧세메스, 이스르엘, 텔 레호브, 텔 단, 텔 브엘세바, 예루살렘 등지에서 요새화된 도 시가 등장하였다. 이들 중 어떤 곳은 매우 계획화된 도시로 건설되었다.야딘에 따르면, 후기 철기 시대에 대체적으로 포곽 성벽에서 두꺼운 단일 성벽(solid wall)으로 요새화의 모습이 전환되었는데 이는 앗시리아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단일 성벽이 용이하기 때문이다.77) 텔 레호브에서 건축된 너비 8미터의 진흙 성벽과 라기스에서 건축된 너비 6미터의 진흙 성벽은 공성퇴 공격에 견디기 용이하다. 이는 요새화의 모습은 공격자의 기술과 전술에 따라 달리 도시가 건축되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짧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앗시리아 제국이 이 지역을 다스렸을 때, 새로운 형 태의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앗시리아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구조물이 알려졌다. 이집트 제국 이 가나안인들을 다스렸던 시기와 유사하게 앗시리아의 지배하에 이 지역은 같은 이유로 대 부분 요새화되지 않았다. 므깃도, 사마리아와 도르만이 이 시기에 성문과 성벽의 요새화된 도시의 모습을 지녔는데78) 이는 아마도 앗시리아 제국의 필요성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므깃도와 도르는 동일한 도시 계획을 보여준다.